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왕코너 화재사고 (문단 편집) == 1974년 화재 == ||[youtube(Dx2BJG9TprQ)]|| || '''당시 [[대한뉴스]] 보도 영상''' || ||[[파일:20231116_165345.jpg|width=100%]]|| ||[[파일:20231116_165302.jpg|width=100%]]|| 대왕코너 화재 사고라고 하면 이 두번째 화재를 주로 말한다 1974년 11월 3일 새벽 2시 47분경, 당시 6층에 있던 브라운 호텔 618호실 앞에 설치된 조명 등의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삽시간에 타임 나이트클럽(고고장) 등이 있던 6층을 모두 태우고 7층으로 옮아가 7층의 멕시코캬바레는 순식간에 정전이 되어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이전에 팬티 차림의 여성이 "불이야!" 라고 외치며 복도를 빠져나갔기 때문에 이미 화재 사실이 알려졌지만 종업원들은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다. 이후 연기가 스며들어 화재 사실이 알려진 뒤 출입문은 하나뿐인 데다 회전식이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양쪽에서 돌리는 바람에 문이 막혀 나가지도 못하는 등 많은 사람을 일시에 대피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종업원들이 "'''돈 내고 나가라'''"고 문을 막아 버려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일부는 창문으로 탈출하려다 한데 엉켜서 사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호텔 투숙객 중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다 추락사한 사람도 있었다. [[나이트클럽]], [[캬바레]]에서 큰 피해가 난 원인은 실내 장식이 가연성인 이유로 준공검사에서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로 무시하고 운영해 왔으며 다섯 차례에 걸친 소방 시설 개수 명령 또한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 소방당국은 초반 4차례 걸쳐 인화성 내부장식을 없애라고 행정 지도를 했고 나머지 1번은 스프링클러나 긴급 방송시설을 구비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또 화재가 난 나이트클럽은 사고 1년 전 소방당국이 내부에 인화성 물질이 있다는 이유로 준공검사를 내주지 않은 채 용도 변경을 신청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이트클럽 측은 외국인에게만 새벽 2시까지 받아들인다는 규정을 어기고 한국인에게 불법 영업했다. 대연각 화재 이후 정부가 종업원들에게 월 1회씩 소방 훈련을 시켰음에도 소화기를 쓸 줄 아는 종업원들이 없었다. ||[[파일:20231116_165530.jpg|width=100%]]|| || '''구급차에 실려나가는 시신들''' || 사고 후 사망 88명, 부상 35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사망자 88명 중 2명의 신원은 아직도 불명이며 이들조차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122100209206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12-21&officeId=00020&pageNo=6&printNo=16378&publishType=00020|가묘 형태로 묻힌 바 있다]]. 이 사고로 실질적인 [[한국]] 최초의 록그룹으로 일컬어지는 밴드 Add4[* [[신중현]]의 첫 그룹. 참고로 앨범 발매 년도가 [[비틀즈]]보다 1년 느린 1964년이다!]의 리드보컬 서정길이 [[고고70]]에 나온 것처럼 타임 나이트 클럽에서 사회를 보다가 화재로 사망하였고 특히 희생자 중 대부분이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들로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역술인]] 차길진의 2011년 칼럼에 의하면 [[대연각호텔 화재]] 참사를 면한 사람이 대왕코너 사고로 죽었다는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5414124|일화도 있었다]]. 3일은 일요일이었는데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날 낮 3층 예식장에서는 22쌍이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110400209206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11-04&officeId=00020&pageNo=6&printNo=16338&publishType=0002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